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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Unitas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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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Unitas::Enterprise Portal 2.0
유지은 CD (중고등BU 서비스혁신실 컨텐츠혁신2팀)
스카이에듀 과학영역 컨텐츠 기획을 맡고 있는 유지은입니다.
2015년 가을 떠났던 180일의 세계일주, 그 첫 번째 여행지인 아프리카의 외딴 섬, 마다가스카르의 이야기를 STian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여러분 마다가스카르 꼭 가세요. 두번 가세요! 제발(✪‿✪)ノ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바람이 불어 가진 것을 잠시 내려두고 2015년 가을 세계일주에 나서게 되었다.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암모나이트 화석과 바오밥 나무가 있다는 고등학교 지구과학 선생님의 한마디가 10년의 세월 동안 가슴에 그대로 남아 세계일주의 첫 발걸음을 그 섬으로 이끌었다.
대도시만 여행해 본 내가, 심지어 동남아도 한번 가보지 않았던 내가, 캐리어 여행만 할 줄 알았던 내가, 6개월 짐을 가득 담은 18kg 배낭을 메고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리고, 첫 날 숙소 하나 달랑 예약한 체 내 꿈의 섬, 아프리카 대륙의 외딴 섬 마다가스카르로 떠났다!
마다가스카르는 원래 아프리카 대륙과 붙어 있었는데 지각판 운동에 의해 1억 7천년 전쯤 아프리카 대륙과 분리되었고, 1억년 전 인도와도 분리되며 섬이 되었다. 오랜 시간 고립되어 있었던 만큼 독자적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 섬에 있는 동식물 중 70%가 오직 마다가스카르에만 존재하는 생물이라고 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 나라가 무슨 언어를 쓰는지도 모르고 이 곳에 와 있었다. 공항에 내려서보니 불어가 보였고, 프랑스 식민지였단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예전에 잠시 배웠던 불어로 심카드구매, 환전, 불법택시 흥정을 했다.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시내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한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들판에 빨래를 말리고 있었고, 생고기를 실온에서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신호등이 없었다. 불법택시 기사님은 영어를 할 줄 몰라 겨우 숙소를 찾았다.
시장 구경에 나섰다가 소매치기를 만났다. 내 가방 끈을 끊어 통째로 들고 도망갔다. 여권, 현금, 핸드폰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여행 첫날에 맞은 날벼락에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매치기를 잡아서 내 가방을 찾아주었다.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도둑을 만났던 시장
안타나나리보 중심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왕비의 궁전이 있다. 이곳에서 영어를 잘하는 가이드를 만나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원주민이 살던 땅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건너와 자리 잡았고 아프리카와 아랍인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며 유럽(프랑스) 사람들에게 식민지배까지 받았다. ‘말라(말레이시아)+가시(원주민)’는 자신들을 지칭하며 말레이-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유럽 문화가 섞인 독자적 문화가 있다. 고유의 언어(=말라가시)가 있으나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많은 곳에서 불어를 찾아볼 수 있다.
Ep2. 딱시부르스. 흥과 정이 넘치는 시외버스
숙소에서 만난 피에르는 프랑스에서 온 개발자였다. 인도도 1달 여행했다는 그의 가방엔 비누 1개, 책 2권, 옷 몇 벌이 전부였다. 만렙 여행자의 기운을 뿜어내는 피에르와 바오밥 군락지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편도 18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하여, 중간중간 쉬어가기로 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난 친구 ‘베로니크’와 함께
우리는 도시 이동을 위해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알아보니 그 버스를 타면 고통과 함께 마다가스카르의 흥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기대를 가득 안고 출발했는데, 버스터미널부터 충격 그 자체였다. 그곳엔 터미널이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정말 크나큰 주차장에 사람과 차가 뒤섞여 카오스를 이루고 있었다. 내 키만한 나무판자로 만들어 무너질 것 같은 가게들이 즐비했고, 그 사이를 차와 사람이 질서 없이 떠다녔다. 흥정꾼들이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어서 내 짐을 가져가려 했다. 자기 차를 타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진짜 무섭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피에르가 불어로 소통을 하고, 나에게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마다가스카르의 흥 넘치는 아이들
정해진 가격도 정해진 출발시간도 없다. 흥정하기 나름이고, 사람이 다 차면 출발한다. 봉고차 같은 크기에 약 20명이 탄다. 2인용 좌석+ 1인용 보조좌석은 4명이 앉는 곳이 된다. 차는 너무 오래된 것이라 내 무릎이 앞 좌석에 꽉 끼었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 것이라 위로해 보았지만 무릎이 너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옆에 앉은 말라가시 언니의 엉덩이가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왔다. 매우 통통하고 뜨거웠다. 더웠다.
소문대로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불렀다. 그 좁은 차 안에서 심지어 몇몇은 들썩들썩 춤도 췄다. 그렇게 5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다가스카르 유행가는 정말 좋다. 딱 내 취향이었다. 흥이 폭발한 5시간이었다.
뙤약볕을 맞으며 통나무 배를 타고 치리히비나 강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가이드 란드리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피에르에게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강가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지나온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우리 배가 지나가면 "바자(외국인)~~~ 바자~~~" 소리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특히 동아시아인은 잘 지나가지 않는 코스여서 그런지 강변에 내리기만 하면 나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를 때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강가 마을은 화장실이 없어 수풀에 볼일을 봐야 했는데, 아이들 때문에 낮에는 도저히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늦은 저녁 수풀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내 인생 처음으로 마주한 남반구의 밤하늘은 낯설고 경이로웠다.
▲마다가스카르의 강가 아이들
강가의 아이들은 무엇이든 곧잘 배우고 가르쳐줬다. 아이들에게 태양을 관측할 수 있는 필름을 나누어주자, 나에게 말라가시어를 가르쳐주었다. 드디어 내가 직접 물건을 사고 흥정할 수 있게 되었다. 란드리는 배를 가지고 다시 반대로 노를 저어 떠났다.
▲뾰족바위 산 칭기
뾰족뾰족한 산 칭기. 칭기는 엄지발가락이라는 뜻인데, 발가락으로 걸을 만큼 바위 산 끝이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캐리비너(금속 고리)를 걸고 암벽등반을 해서 칭기의 높은 곳까지 올라섰다. 뾰족한 끝이 신발을 너머 발바닥으로 느껴졌다. 그 장관은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서스펜션 브릿지를 건너 평지로 내려가니 해양생물의 화석이 길에 널려있었다. 몇 억년 전 과거와 공존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높은 암벽 사이에서 운전가이드 알란 아저씨가 가져와주신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오밥나무 군락지
바오밥 거리는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정말이지 보기 힘들던 동아시아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일행인 안젤라 아줌마와 막스 아저씨를 만났다. 바오밥 군락지의 일몰은 환상적이었다. 항상 금전문제로 투덜거리기 일쑤였던 안젤라 아주머니는 바오밥 사이에 물든 노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관광상품화 되어버린 풍경이라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엽서에서, TV에서 많이 보아온 풍경이라도 실제로 그 곳에 있다는 것은 큰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형언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내가 감히 이곳에 있어도 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바오밥 군락지에서 남쪽으로 서해안을 따라 이동했다. 알란 아저씨의 비포장도로 운전은 정말 멋있었다.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우리는 계속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다.
▲서해 일몰
어떤 마을에선 단 하나 있는 디스코텍에서 동네 사람들과 신나게 막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바닷가에선 아이들과 두꺼비집을 짓고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우연히 만난 공부방 원장님에게서 말라가시어 동사 시제변형을 배우면서 말이 갑자기 엄청 늘기도 했다. 또 어떤 카페에선 잊을 수 없는 일몰을 보다가 술에 너무 취해 기억을 잃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에 해장국을 찾다가 마다가스카르 사람이 생각하는 중국음식이 뭔지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냥 생수 끓여서 버섯과 면을 넣어주더라. 허허)
바닷물에 샤워를 해 머리가 빗어지지 않고 바닷물로 지은 밥에선 돌이 계속 씹혔지만 서해바다의 풍경에 취해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내가 떠나던 날 숙소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배웅해주던 아이들, 잘 지내고 있겠지?
여행 초반,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이 곳은 생각만으로 포근해지는 곳이 되었다.
▲이살루 국립공원
이 곳의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랑과 이 섬의 자연이 준 수 많은 인사이트들은 내 세계일주를 완성하는 바탕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육로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슬럼프가 찾아왔지만 유럽과 남미대륙으로 나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180일의 세계일주에서 가장 기억의 남는 곳이라 하면 망설임 없이 마다가스카르를 꼽는다. 물론 이 곳만큼 친절한 사람들, 이 곳보다 좋은 관광포인트는 많았다. 하지만 기대하지 못한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한 곳이기에,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섬이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이다♥